마음의 길, Way of the Heart

마음의 길, Way of the Heart는 예수성심의 사랑을 체험하고 우리의 사랑을 그분께 응답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길은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의 마음과 일치를 이루고, 그 마음으로 세상에 파견되는 여정이다.

18) 「A pathway with Jesus in apostolic readiness」 Recreation of the Apostleship of Prayer  Document 1, 박병훈 譯, Rome, 2014.








마음의 길, 기도의 사도직

기도의 사도직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위해 우리 자신을 내적으로 준비시키는 여정이며, 범세계적인 기도 네트워크이다.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셨다.”(루카 10,1)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요한 4,23)

⭗ 기도의 사도직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위해 우리 자신을 내적으로 준비시키는 여정이다. 이 준비를 위한 원천과 모델은 우리를 위해 성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 언제나 현존하신다. ‘그분의 생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날마다 우리의 삶을 성부께 봉헌하는 것이다.

⭗ 기도의 사도직은 영적 여정이다. 이 여정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벗이자 사도가 되도록 돕고, 그들의 선교 열정을 일깨운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예수성심이 상징하는 인격적 사랑의 계명으로 이끈다.

⭗ 기도의 사도직은 인류가 직면한 도전과 교회의 사명에 응답하는 범세계적인 기도 네트워크이다. 매월 교황님 기도지향은 이러한 도전과 사명을 담고 있다.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전 세계로 확장되고, 언제 어디서나 우리 형제자매들의 기쁨과 희망, 아픔과 고통에 인격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 기도의 사도직은 ‘사도적 준비성’(apostolic readiness)이라 불리는 내적 태도를 갖추도록 초대한다. 이 태도는 사랑의 열매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에 기초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랑에 응답하며 ‘사도적 유용성’(apostolic availability)19)을 갖추려는 태도이다.

 - 기도의 사도직은 ‘마음의 길’(Way of the Heart)이라 불리는 영적 훈련과 양성을 통해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에서조차 부활하신 주님의 사명에 더 잘 협력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이렇게 준비된 우리는 우리의 삶과 마음을 예수님의 삶과 마음에 일치시키며, 성령께 우리 자신을 열린 마음으로 개방한다. ‘마음의 길’은 단순하면서도 철저히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성부와 성자께 봉헌하도록 초대한다.

 - 기도의 사도직은 우리를 ‘성체성사적 삶’으로 초대한다.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삶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사도적 준비성의 궁극적 원천이자 우리가 받은 영감의 근원이다. 성만찬을 기념할 때, 우리는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예수님과 결합된다. 성만찬은 우리의 치유를 위해 우리의 역사를 당신의 역사에 결합시키신 성부의 주도적인 계획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우리를 화해시키고, 속박에서 해방시키며, 그분의 사명에 협력하도록 우리의 삶을 봉헌하게 할 것이다.

 - 기도의 사도직은 현대 세계가 직면한 도전 앞에 수천만 명이 교황님과 함께 기도드리는 범세계적 네트워크에 동참하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교황님의 기도지향은 교회와 인류가 직면한 급박한 필요를 알려주고, 우리는 기도지향에 따라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위해 투신한다. 기도의 사도직은 타 종교 사람들을 포함하여, 더 큰 형제애와 정의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과 협력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교황께서 예수회에 맡기신 기도의 사도직은 ‘기도의 학교’로 교황님 기도지향을 교회에 전파한다.

 - 기도의 사도직은 교회 내 모든 개인과 단체를 위해 봉사한다. 지역 문화의 필요나 지역 교회의 요구에 따라 전통적 방식의 조직을 만들 수도 있고, 교회 내 기존 단체의 활동 중 하나로 또는 개인적인 신심 활동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기도의 사도직은 그리스도인들이 세례 성소를 더 깊은 차원에서 살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사도가 되도록 할 것이다.

 - 기도의 사도직은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길 바라고 주님의 뜻에 더욱 기민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상의 삶을 예수성심께 봉헌하고 예수님과 연대하라”고 초대한다. 주님과의 연대를 통해 우리는 그분과 친밀한 우정을 쌓고, 주님의 사도로서 그분의 사명에 더욱 헌신하려는 원의를 드러낸다.

 - 기도의 사도직 영적 여정은 주님의 마음을 향해 가고, 주님 사랑 안에 머물며,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에 파견되는 것이다. 따라서 첫째, 기도의 사도직은 ‘마음의 길’이라는 믿음의 로드맵을 제시한다. ‘마음의 길’은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더욱 잘 준비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다. 둘째, 교황님과 교회의 사명에 협력하기 위해, 우리는 매일 교황님의 기도지향에 따라 살아간다.

 - 기도의 사도직은 본당과 교구 조직 내 평신도들의 영적 삶을 훈련하고 쇄신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하여 세상 안에서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고, 타인을 위한 삶을 실천하며, 하느님 나라 건설에 투신하는 삶을 살아간다.


19) ‘유용성’(availability)은 ‘기동성’(mobility), ‘적응성’(adaptability)과 함께 예수회원의 행동양식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사도적 유용성을 갖춘 태도는 언제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태도를 의미한다.


마음의 길, Way of the Heart

기도의 사도직 영적 여정은 주님의 마음을 향해 가고,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에 파견되는 것이다.

기도의 사도직 영성과 양성 프로그램은 ‘마음의 학교’로 표현된다. 9단계로 구성된 전체 여정은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계획에 합치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각 단계에서 사용된 성경구절과 인용구들은 우리 각자와 모든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인격적인 사랑의 계명을 살아가고, 주님의 사도로서, 당신의 사명에 기민하게 협력하라는 초대를 받았다. 또한 우리는 교회에 봉사함으로써, 세상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연민 가득한 사랑을 드러내라는 파견을 받았다. 아래의 내용들은 기도의 사도직이 갖고 있는 통합적인 전망과 내적 여정을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범세계적 기도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 되라는 초대를 한다.


1단계 -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사랑의 설계자이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예레미야 31,3)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 49,15)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1요한 4,10)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소 1,4)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


우리 신앙의 첫 번째 표현이자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성부의 영원하신 사랑’이다. 성부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시는 말씀과 매일 일상의 삶에서 성부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성부의 마음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 이 말은 하느님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계신다. 심지어 우리가 죄로 인해 그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무조건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이것이 우리가 걷고 있는 영적 여정의 원칙이자 토대이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시작되었고 유지되고 있으며, 언젠가 우리의 생명은 다시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 또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단계 - 불안하고 궁핍한 인간의 마음

마음의 평화를 잃은 사람들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시편 63,2)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시편 130,1)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오 5,3)

“사랑하는 주님, 어디로 숨으셨나이까? 신음 중인 저를 버려두시나이까?”(《영적 찬가》 십자가의 성 요한)

“주님을 위해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 저희 마음이 착잡하지 않나이다.”(《고백록》 성 아우구스티노)


우리는 행복을 갈망하며 수많은 방법을 통해 그것을 추구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관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영적 가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깊은 욕구와 그에 따른 좌절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여러 형태의 개인적인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 채 우리는 내적 평화를 찾지 못한다. 기도의 사도직은 영적 결핍을 느끼는 이들과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갈망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신앙과 기도 그리고 참된 삶을 위한 길을 제안한다. 이 길에서 우리의 약한 마음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이 기우시는 하느님과의 내적 만남을 통해 우리의 약함은 오히려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다.


3단계 - 부서진 세상

사랑을 잃은 고독의 여정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창세기 1,31)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예레미야 2,13)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찾아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떠돌아다녀도 찾아내지 못하리라.”(아모스 8,12)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깨어나소서, 주님, 어찌하여 주무십니까? 잠을 깨소서, 저희를 영영 버리지 마소서!”(시편 44,23-24)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통해 인류의 정신이 이룩해온 위대한 업적을 경이로이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이 세상은 죽음과 고통을 유발시키는 여러 모순으로 인해 상처받고 있다. 폭력과 이기심이 생명과 사랑을 질식시키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힘없고 약한 이들을 짓밟고 있다. 천연자원은 고갈되어가고 있고, 극도의 슬픔과 외로움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평화와 정의를 향한 울부짖음 속에서 우리는 당신께 돌아오라는 성부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다. 우리는 주님의 길로부터, 인간을 향한 그분의 계획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


4단계 - 구원을 위해 성부께서 성자를 보내시다

상처받은 이 세상의 치유와 복원을 위해 성자를 보내시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야 43,19)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탈출기 3,7-8)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호세아 11,3-4)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2코린토 5,19)

“성령께서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로마 8,2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10)


성부께서는 우리를 부서진 세상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말씀하신 성부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이르러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상처받은 이 세상의 치유와 복원을 위해 성부께선 우리의 역사를 당신 자신의 역사와 결합시키셨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성자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주신다. 성자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기로 하신 성부 하느님의 열정적인 사랑이 드러났다. 성자와 함께, 우리는 세상에서 일하시며 고통과 고난의 한 가운데서도 무엇인가 내게 새로운 일을 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영을 분별하는 법을 배운다.


5단계 - 우리를 친구로 부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초대하신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나의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이사야 43,1.4)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마르코 3,13-14)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던 사람이다.”(요한 21,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20)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히브리 7,25)

“나는 불신자들의 땅을 모두 정복하고자 한다.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나와 의식주를 똑같이 할 것이다. 또 낮에 일하고 밤에 파수를 서는 것도 나와 똑같이 해야 한다.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승리했을 때 나와 함께 한몫을 차지하게 하겠다.”(《영신수련》 93번, 성 이냐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부르시며, 우리를 당신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초대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중재해주시고,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시며, 우리를 소중한 보물처럼 바라보고 계신다. 예수님과 우정을 맺고 세상을 예수님의 눈으로 보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기쁨과 고통을 나누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그분과 함께 일하며 우리 자신을 봉헌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곁에 함께 계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것이다.


6단계 -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4,20)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4.9)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티아 2,20)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토 3,16)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1요한 2,24)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에페소 3,17)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토 3,18)


우리를 향한 무한하신 사랑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머물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남기셨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사도 바오로는 이것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티아 2,20)라고 증언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궁극의 지평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몸과 영혼과 정신을 다해 당신을 따르기를 바라신다. 우리 역시 이러한 원의를 겸손한 마음으로 청한다.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성체성사 안에서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믿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와 성혈을 통해 스스로를 우리에게 내어주신다. 우리의 마음이 당신의 성심을 닮게 하고, 우리가 마음 안에 그분을 간직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이다.


7단계 - 그분을 따르며 우리의 삶을 봉헌하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삶과 성심에 우리의 봉헌을 결합시키시기에 우리의 보잘것없는 봉헌도 거룩히 승화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로마 8,26)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코 12,43-44)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리 10,9)

“받아주소서, 주님. 저의 모든 자유와 저의 기억과 지성, 저의 모든 의지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주소서. 당신이 이것들을 제게 주셨습니다. 주님, 이 모두를 돌려드립니다. 모두가 당신 것이오니 당신 뜻대로 처리하소서. 제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족하옵니다.”(《영신수련》 234번, 성 이냐시오)


그리스도께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 역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의 삶을 내어줄 수 있다. 우리는 약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받고 있고 선택되었으며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받은 좋은 것들을 되돌려 드리려는 마음으로 사도적 준비성을 갖추고 우리의 삶을 봉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헛되이 만들려는 우리 안의 이기심과 나태함을 거스를 때 가능하다. 나자렛의 마리아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의 부르심에 관대하게 응답하라는 초대를 받았다. 하느님께선 우리들의 협력 없이 우리를 구원하시거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내 개인적인 봉헌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삶과 성심에 우리의 봉헌을 결합시키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 곁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세상의 아픔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되고, 그분께서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요구에 응답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봉헌기도를 통해 성자와 함께 일하고 싶은 원의를 성부 하느님께 아뢰며,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거스르지 않도록 겸손되이 기도한다. 성자께서 보여주신 성부를 향한 완전한 봉헌이자 우리가 바치는 봉헌의 모델인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는 특별한 방식으로 영감을 받고 양육된다.


8단계 - 연민의 사명

우리는 상처받고 부서진 마음을 돌보고 치유하도록 오늘 하루 내 일상으로 파견된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이사야 61,1)

“가난한 이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라.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너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다.”(토빗기 4,7)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피 2,5)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코 1,4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루카 4,18)

“성삼위께서 넓고 둥근 이 세상에 사람들이 꽉 차있는 것을 어떻게 보고 계셨는지 관상하라. 첫째 요점은 사람들을 한 무리씩 차례로 보는데 먼저 세상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옷차림이나 행동이 각양각색임임을 본다. 백인들이 있는가 하면 흑인들도 있고, 평화 중에 있는가 하면 전쟁 중에 있고, 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웃는 이들이 있고, 건강한 이들과 병든 이들이 있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어가는 이들이 있는 식이다.”(《영신수련》 102, 106번, 성 이냐시오)


예수님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성부 하느님께서는 세상 안에 현존하는 당신의 연민이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현존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인류를 바라보시는 성부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눈빛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을 지니고 활동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파견된다. 불의로 고통 받고 있는 곳을 찾아가 상처받고 부서진 마음을 돌보고 치유하도록 우리는 파견된다. 비록 몸이 아파 육체적인 제한이 있더라도, 사회의 불의한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눈빛이 되어 이러한 사명에 동참하게 된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연민에 의해 은총을 받았기에 우리는 연민의 사명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되돌려 드리는 우리의 방법이다.

우리는 교회의 경계를 넘어 활동한다. 예수님의 영은 하느님의 연민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기도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하느님의 영에 개방된 모든 문화와 종교를 가진 이들과 함께 일하며, 도움이 절실한 이들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이다.


9단계 - 인류의 긴박한 요구에 주목하는 기도와 봉사의 범세계적 네트워크

기도의 사도직은 그리스도의 사명에 협력하고자 하는 이들의 영적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주님의 기억을 일깨우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마라.”(이사야 62,1.6)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마흔다섯 명, 마흔 명, 서른 명, 스무 명, 열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쉰 명(마흔다섯 명, 마흔 명, 서른 명, 스무 명,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창세기 18,22-32)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행전 1,14)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1베드로 2,5)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셨다.”(루카 10,1)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기도의 사도직은 교황님께서 매달 제시하시는 기도지향을 위한 범세계적인 기도 네트워크이다. 교황님 기도지향은 현대 세계에 대한 교황님의 우려와 관심을 표하고 있으며, 인류와 교회의 실질적인 도전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 지향을 통해 우리의 기도와 행동이 정향 되길 바란다.

어떤 장소나 상황이든 자신들의 삶을 매일 일상에서 봉헌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명에 협력하고자 하는 이들이 영적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으로부터 세상의 마음으로 파견된 사도로 만든 불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명을 위한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에 초대받은 첫 번째 단체는 다양한 국적과 문화와 영성을 배경으로 하는 가톨릭 신자들이다. 기도의 사도직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은 교회 일치에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여러 방식으로 이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다. 교황님의 기도지향에 함축되어 있는 도전은 우리를 다른 전통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세상의 보다 큰 사랑과 정의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과 협력하도록 이끌 것이다.


인류가 직면한 도전과 교회의 사명

교황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사도직이 보편교회의 사명에 투신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기도의 사도직은 매달 교황님으로부터 인류와 교회에 대한 교황님의 관심이 반영된 기도지향을 위임받는다. 우리는 이 지향에 따라 기도를 하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더욱 많은 이들이 교황님과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한다. 교황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사도직이 보편교회의 사명에 투신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첫 번째 표지이다.

이 지향들을 통해 우리를 국제적인 이슈에 관심을 갖도록 초대하는 교황님의 지혜와 권위 있는 시선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전체 교회의 수장으로서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기쁨과 고통을 민감하게 바라보는 보편적 시선이다. 교황님의 지향은 우리가 기도와 삶 안에서 당면해야 하는 긴박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도와 삶의 일치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교황님의 지향은 일상의 삶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우리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또는 교황님의 기도지향에 따라 기도하는 한 달 동안 해당 이슈의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기관에 관심을 가지고 접촉하여 우리와 관심을 공유하는 그들과 동반자 관계를 수립할 수도 있다.

교황님 기도지향은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보편 지향’이고, 두 번째는 ‘복음화 지향’이다. ‘보편 지향’은 가톨릭 신자를 포함해서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갖는 내용이다. 따라서 보편 지향은 교회의 관심이지만 교회의 영역을 넘어선다. 기본적으로 보편 지향은 기술된 상황에서 교회의 책무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우리의 바람이다. 교황님은 우리가 이 지향에 따라 기도하고 행동하라고 초대하시며, 우리 각자를 세상과 일상으로 파견하신다. 우리는 또한 세상과 대화하고 세상을 위해 겸손하게 봉사하며 종교가 다르거나 생각이 다른 이들과도 협력한다.

이에 비해 ‘복음화 지향’은 교회의 삶에 영향을 주는 보다 직접적인 도전에 관심을 가지며, 복음화를 위해 교회가 더 나은 도구가 되려는 바람을 담고 있다.

교회의 선교는 단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교회 안의 모든 것은 선교와 관련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보편 지향과 복음화 지향 모두 선교와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이 어떤 구체적 도전에 주목하여 현대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사명에 더 잘 봉사하려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유형의 지향을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고, 우리 형제자매들의 기쁨과 희망, 아픔과 고통에 동참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선 주교들이 지역 교회의 기도지향을 추가하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해당 지역에서 기도의 사도직이 맡은 봉사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