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사도직 역사 2)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 역시 선교사들의 삶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며 우리의 삶 역시 교회의 사명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진 설립 175주년 기념미사 - 성 요한 대성당 2019년 6월 28일

2) 「The history of the Apostleship of Prayer」 Recreation of the Apostleship of Prayer  Document 2, 박병훈 譯, Rome, 2014.










1) 탄생


기도의 사도직은 1844년 프랑스 중남부 도시 발(Vals-pres-le-Puy)에 있는 예수회 양성공동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예수회 신학생들의 영적 지도를 담당했던 고트를레(Francis Xavier Gautrelet, S.J.) 신부는 신학생들에게 일상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사도이자 선교사로 살아가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 시작은 인도 남부의 마두라이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예수회 사제들이 프랑스로 일시 귀국하여 자신들이 공부했던 신학교를 방문하면서였다. 그들은 신학생들에게 복음이 필요한 선교지의 많은 사람들과 상황에 대해 자신들의 체험을 열정적으로 나누었고, 신학생들은 그들의 열정과 선교 활동에 고무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실망과 낙담에 빠졌는데, 그들이 서품을 받고 선교지로 파견될 때까지 아직 긴 시간 동안 거쳐야 할 과정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학업은 끝이 없어 보였고, 시험은 의미를 찾을 수 없었으며, 공동체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기도는 판에 박힌 듯 반복되었고, 자신들이 있는 지역에서 행하는 사도직은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도서관에서 인도에 관한 서적을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학업에는 점점 소홀해졌다. 이렇게 신학생들이 좌절감을 체험하고 있던 상황에서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찾을 수 있는 고트를레 신부의 제안이 있었다.

1844년 12월 3일, 미사를 집전하던 고트를레 신부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신의 삶을 봉헌하였음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하비에르를 기념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비에르는 중국 해안에 도달했고 수많은 시련을 감내했습니다. 예수님의 열정적인 사랑에 감동을 받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우리가 처한 각자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된 동일한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아시아가 아닌 바로 이곳 양성공동체에서 그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비에르가 했던 바로 그 선택이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동일한 부르심이자 동일한 사랑이고 동일한 사명입니다. 그것이 다른 시대에,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뿐입니다.” 고트를레 신부는 매일 그들이 해야 할 일상의 의무를 잘 수행하도록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며 오늘 하루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을 그분께 봉헌함으로써, 지금 이 자리에서 선교사가 되라는 초대를 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학생이기에 자신들의 학업에 열중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행하는 일들이 그들의 사명인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며, 자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2) 기도의 사도직


고트를레 신부는 자신의 제안을 ‘기도의 사도직’이라고 명명하며,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을 사랑으로 봉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상적인 일들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인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내어주고 계시는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처럼 자기희생을 통해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 역시 선교사들의 삶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며 교회의 사명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서조차 주님의 성심과 일치한다면, 우리의 삶은 열정적인 선교사들의 삶처럼 사도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지속적으로 새로워지길 바라며 날마다 사도적 유용성을 새롭게 하며 투신하는 내적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주님 성심의 사랑이 우리를 선택했으므로, 우리가 받은 큰 선물에 감사드리며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하고 관대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고트를레 신부가 제안한 특별한 방법은 매일 아침 그날 하루를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기도를 바치는 것이었다. 아침 봉헌기도를 통해 오늘 하루 전체가 주님을 위한 것이 되리라는 원의와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고트를레 신부는 그들이 이미 체험한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서 언급하였듯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무질서한 애착으로부터 벗어나 하느님의 거룩한 뜻 안에서 일상을 봉헌하고 매일의 삶을 재조명하라"고 초대했다.(영신수련 1번 참조)3) "기도의 사도직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영신수련 233번)4)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려는 우리의 이상이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도울 것입니다." 고트를레 신부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항구적인 사도적 유용성을 살아갈 수 있도록 흥미로운 방법을 제안하였고, 이는 영신수련을 했을 때 영원한 왕의 부르심에 관대함으로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주님께 '네'라고 대답했던 것을(영신수련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관상' 참조)5)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고트를레 신부의 이러한 제안은 의기소침했던 신학생들에게 뜻밖의 새로운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일상의 노력과 활동을 통해 예수님께 대한 인격적이고 정서적인 사랑을 표현할 수 있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사명에 응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고 지금 여기에서든 미래 어디에서든 그분을 위한 선교사가 되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신학생들은 매일 아침 봉헌이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 성부께 드린 봉헌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예수님의 전 생애가 현존하며 신비롭게 머무는 성체성사처럼 일상 안에서 그들이 바치는 봉헌이 성체성사적임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것은 성체성사에서 다시 실재(實在)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예수성심을 닮기 바랐고, 그들이 닮기를 바랐던 마음은 '성부께 자신을 봉헌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은 마음, 즉, 예수님께서 지니신 성체성사적 마음(Eucharistic heart)'이었다. 그리하여 매일 아침에 드리는 단순한 봉헌기도문을 통해 그들의 삶은 신비롭고 깊은 차원의 '실재'와 결합하게 되었다.

신학생들은 점차 자신들의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진정한 사도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한 선교사가 되어 자신들의 삶을 봉헌하는 꿈을 꾸어왔다. 그러나 그리스도 사명의 사도이자 협력자가 되기 위해 양성을 마친 후 사제 서품을 받고 머나먼 타국으로 파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바로 지금 여기 일상의 단순한 일들, 특히 학업에 충실함으로써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열정적으로 투신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서 사제직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그들이 해야 하는 사도직이었다. 그것은 드러나지 않게 조용하고 겸손하게 이루어지는 그러나 중요하고 효과적인 사도직이었다. 또한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교회의 사명에 자신을 영적으로 일치시키는 일이었고, 희생과 자기 포기를 통해 전 세계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영적으로 지원하는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영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신학생들은 아침 봉헌기도와 저녁 양심성찰을 연결시켰다. 하루를 마치고 양심성찰을 하면서 아침에 드렸던 봉헌과 함께 한 하루의 일상에서 하느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돌아보고 감사를 드렸다. 이렇듯 아침 봉헌기도와 저녁 양심성찰은 하루 중 그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더욱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그분의 현존을 더욱 의식하게 하였다.


3) "영신수련이란 양심 성찰과 묵상 기도, 관상 기도와 염경 기도 및 침묵 중에 기도하는 방법을 포함하여 앞으로 다루게 될 모든 정신 활동의 방식들을 말한다. 산보와 걷기, 달리기가 몸의 운동인 것과 같이 우리 정신이 온갖 무질서한 애착을 없애도록 준비하고 내적 자세를 갖추며 그런 다음에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려는 모든 방법을 영신수련이라고 하는 것이다."(《영신수련》 정제천 譯,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2005, 11쪽)

4) "두 번째 길잡이는 내가 원하는 것을 청함인데 여기서는 지금까지 받은 그 많은 것들에 대한 내적 인식을 구한다. 이로써 내가 받은 것들을 온전히 깨달아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고자 하는 것이다."(《영신수련》 정제천 譯,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2005, 99쪽)

5) 《영신수련》 정제천 譯,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2005, 51쪽


3) 교회 내 확산


기도의 사도직은 신학생들이 주말에 사도직에서 만나던 주민들을 통해 인근 지역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지역 주민들 역시 복음에 따라 충실히 살면서 교회를 위해 자신들의 일, 기쁨과 고통 그리고 기도를 봉헌하도록 초대를 받았고 그들 역시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사도가 될 수 있었다.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기도의 사도직은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고 수백만의 신자들이 함께 했다. 교구 본당과 가톨릭 기관에 기도의 사도직 단체가 만들어졌고 새로운 단체를 총괄하기 위한 조직이 각 교구 내에 갖춰졌다. 지역 주교들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기도의 사도직은 여러 지역에서 가시적이고 조직적인 교회 운동의 형태를 띠게 되었는데, 이는 고트를레 신부가 초대한 라미에르(Henri Ramiere, S.J.) 신부의 노력이었다.

기도의 사도직은 그 영성을 살아가는 이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에 새롭고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명에 협력하는 방식으로 무의미해 보이던 일상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세례성사의 부르심과 평신도의 보편 사제직이 언급되기 이전부터, 기도의 사도직은 평범한 일상에서 세례성사의 삶을 살아가고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방법을 제안했던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사도직 영성과 기도의 사도직에서 제안하는 방식에 따라 살아가도록 초대를 받았기에, 굳이 특정 단체에 속할 필요 없이 누구든 기도의 사도직 회원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은 기도의 사도직이 초기에는 독실한 신자들의 신심 활동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의 사도직에 직접 가입하여 회원이 되거나, 단순히 그 영성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이 초기부터 이미 존재했다.


4) 교황님 기도지향


1849년 비오 9세는 일상의 삶을 봉헌하며 교회의 사명을 영적으로 지원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대규모 네트워크에 큰 관심을 보였다. 레오 13세는 1879년 이 단체를 승인하였으며, 1890년 기도의 사도직을 교황청 사도직으로 편입하고 이를 예수회에 위임하면서 매달 한 가지의 기도지향을 기도의 사도직에 요청하였다. 기도지향은 인류를 향한 교황의 관심을 반영하여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매달 지향에 따라 기도하기를 권고하였다. 비오 11세는 1928년 매달 두 번째 기도지향을 추가하였다. 이리하여 기도의 사도직은 매달 교황으로부터 두 가지의 기도지향을 받아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전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두 가지 기도지향은 일반지향과 선교지향이라 불렸다.

신자들은 세상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를 반영한 지향과 선교 지역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의 시야는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신자들은 이를 통해 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하였고, 자신들이 예수님의 사명에 협력하도록 그분에 의해 선택된 사도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단순한 일상의 삶이 교회의 사명을 지속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교황님 기도지향의 주제는 오늘날까지 해를 거듭하며 변화해왔고, 오늘날 기도지향의 대부분은 세상의 정의와 평화에 대한 보편교회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매달 기도하고 봉사하는 삶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하고 있는 기도지향은 인류가 처한 새로운 도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5) 현재 및 한국 현황


예수회 28대 총장 아루페(Arrupe)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담은 새로운 정관을 만들어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의 승인을 받았다. 2008년 니콜라스(Nicolas) 신부가 예수회 30대 총장으로 취임한 후, 기도의 사도직은 변화된 시대 흐름에 맞춰 재창조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로운 정관을 승인하면서 그동안 교황께서 예수회에 위임했던 기도의 사도직을 교황청 산하 사도직으로 편입하였으며, 그 명칭을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Pope's Worldwide Prayer Network)'로 바꾸고 지역 상황에 맞춰 '기도의 사도직'과 혼용하여 사용하게 하였다. 또한 교황께서는 매달 두 가지였던 지향을 하나로 하시어 신자들로 하여금 기도지향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20년 12월 3일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는 공식적으로 교황청 소속 기관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기도의 사도직은 2021년 현재 전 세계 98개국, 3천 5백만 명의 회원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특별히 2019년 6월 28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모시고 전세계에서 모인 6천여 기도의 사도직 회원들이 설립 175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한국에서는 1993년 12월 1일 예수회 박문수 신부가 한국 책임자로 처음 임명되었으며, 지도신부로 있는 '사랑의 고리'를 중심으로 이 신심을 전개하였다. '사랑의 고리'는 1978년 설립된 장애우 공동체로 이후 기도의 사도직 영성을 공동체의 생활 양식으로 채택하였다.

2005년 2월 1일 예수회 손우배 신부가 한국 책임자로 임명된 후, 2009년 9월 건립된 예수회센터를 중심으로 매월 첫 금요일 예수성심 신심미사, 예수성심 대피정, 기도학교, 기도모임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도의 사도직 관련 자료를 인쇄하고 홈페이지 및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 인터넷을 활용하여 기도의 사도직을 보급하고 있다. 손우배 신부는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로 명칭이 변경된 후 2017년 2월 20일 한국 책임자로 주교회의의 승인을 취하였다. 또한 한국 기도의 사도직은 2005년 한국에 진출한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와 협력하여 예수성심을 한국 교회에 전하는 일에 투신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예수회 최준열 신부가 기도의 사도직 부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2021년 현재 한국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회원을 포함하여 천여 명의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